경남 하동에 있는 농협에서 직원이 9개월 동안 수십억 원을 횡령해 무려 10억 원을 룸살롱 등에서 유흥비로 탕진하는 어처구니없는 비리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수사한 하동경찰서에서 따르면, 하동농협 직원 A씨(34)는 농기계를 산 것처럼 농협 내부 전산망을 조작해 지난해 3월부터 무려 230여 차례에 걸쳐 21억 원을 빼돌린 뒤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고 한다.
경찰 수사 결과 A씨는 횡령한 돈으로 광양·여수·진주 등 인근 지역의 고급 룸살롱을 돌아다니며 흥청망청 쓴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달에 많을 때는 15번 이상, 어떤 때는 5~6명의 도우미를 불러놓고 고급 양주 10여 병을 마셔 한 번 술값으로 2천만 원을 지불할 때도 있었다고 하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금융계는 그 어느 직종보다 철저한 ‘금융 윤리’가 요구되고 신용과 신뢰를 생명처럼 다뤄야 할 분야다. 그럼에도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처럼 고객이 불안에 떨어야 할 처지라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다. 농협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데는 농협 내부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느슨한 통제 등 부실한 시스템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농협에서 비리 사건이 끊이질 않고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 비리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얘기다.
그 중심에는 이를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한 최 회장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농업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최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제4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취임했고, 2011년 재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포항 동지상고 동문으로 최 회장이 이 전 대통령보다 4년 후배다. 최 회장은 안강농협조합장에 6차례나 당선되면서 1986년부터 2008년까지 20년 넘게 조합장을 지냈다.
최 회장은 지난 1989년 옛 민자당(현 한나라당) 경주지부당 부위원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 1991년부터는 경상북도의회 의원을 지내며 4선까지 하는 등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경상북도의회 부의장과 의장을 역임했고 2009년부터는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최 회장의 농협은 지난 수년 동안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11년 4월, 농협은 사상 초유의 전산망 사고로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최 회장은 “내가 왜 책임을 지나. 나도 보고를 제대로 못 받았다”며 책임을 실무자들에게 미뤄 비난을 받았다. 그는 이 사건으로 대내외에서 전방위 사퇴압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책임도지지 않고 자리에서 물어나지도 않았다.
실제로 농협은 직원들의 각종 비리 사건이 터졌고, 지난 2011년부터 거의 매해 전산망 마비 사태가 재발해 고객들의 큰 불편을 겪었다. NH농협금융지주는 출범하자마자 정부지원금 미비로 11조 원의 빚더미에 오른 상태다.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로부터 “농협이 신경분리의 목적인 ‘경제사업 활성화’를 망각하고 실상 조직 확대와 연봉 잔치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날선 질타를 받았다.
최근에는 전국농업협동조합이 집회를 열고 “최원병 회장이 전산마비 사태 재발과 노조 탄압을 일삼고 있다”며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농협의 방만 경영도 이미 도를 넘어섰다.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의 국감자료를 보면 지난 2013년 말 기준 농협 임직원 수 대비 법인카드는 1.8명당 1개꼴로 집계됐다. 1개 카드당 4천만 원, 임직원 1명당 기준으로 2천178만 원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꼴이다. 고액연봉에다 과도한 복리후생에도 불구하고 금융 사고나 개인 비리는 계속 터진다. 농협의 총체적 부실, 모럴해저드, 주인의식 없는 경영 스타일이 또 도마 위에 올랐지만 최 회장은 책임질 줄을 모른다.
농협은 또 ‘신(神)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농협중앙회와 산하기관의 억대 연봉자가 지난해 2천010명으로 전년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성과급 또한 매년 늘어난다. 농협 금융지주의 1인당 기본성과급 2천400만 원, 농협은행의 기본성과급은 1천800만 원이다. 특별성과급은 지난해에만 623억9천500여만 원이 집행됐다. 임직원 자녀에게 224억 원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5급 직원까지만 별도 수당도 지급했다. 정부가 2012년 사업구조개편 차원에서 1조 원에 달하는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고, 4조 원 정도의 이자를 대신 내주고 있는데도 막상 농협은 딴전을 피우는 격이다. 농협 존립 목적을 무색케 한다. 최근 3년간 금융사고액만 26억2천만 원(37건)이었다. 2010년 이후 지역단위 조합에서 발생한 사고금액은 무려 638억 원이다.
‘농협을 농민에게’라는 기치를 내 건 농협의 실적은 저조하기만 하다. 잦은 비리 사건과 방만 경영, 조직 내의 ‘내 사람심기’, ‘나눠먹기’ 등의 고질적인 병폐를 청산해야 하다. 그 출발점은 최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최 회장과 농협은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농민들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5년 1월 8일
국제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