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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이’를 기억하는가
 
記者 김동길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청나라 최후의 황제 ‘푸이’를 생각한다. 1908년 그는 혈통을 이어 세 살밖에 안 되는 나이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는데 자기 자신이 황제가 된 줄도 모르는 가엾은 젖먹이였다. 그러나 1911년 중국 본토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황제의 자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만주 사변이 터진 1931년 일본군에 의해 장춘으로 이송되었고 1932년 일본의 괴뢰 국가로 탄생한 만주국의 집정이 되었다가 드디어 1934년에는 만주국의 황제가 되어 강덕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그 뒤 ‘푸이’가 겪은 시련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어쩌다 내게 있게 된 만주 중앙은행이 발행한 100원(100위안)권 한 장 때문이다. 만주국이 수립되고 곧 찍어낸 지폐처럼 보이는데 족히 90년은 되었을 것이다. 많이 쓰였던지 낡고 또 낡아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빈약한 만주국의 지폐 한 장.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도 망하고 민중 반란도 일어나면서 '푸이'는 잡히고 만주국은 무너지게 되었으니 그의 처신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푸이', 그는 평민의 신분이 되어 61세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말할 수 없이 가난하고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내 손에 있는 백원(100위안)짜리 낡은 지폐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그는 살고 갔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한낱 봄날의 꿈이 아닌가.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03/29 [06:52]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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