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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덕아
 
記者 김동길
 
 

     1988년 2월 13일에 적은 나의 집기장에 이런 한마디가 있다. "희덕아, 그 깊은 산중에 너를 묻고 돌아서는 형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너는 알겠지"


     희덕이는 젖먹이였던 때 나의 어머님이 한 집에서 우리들과 꼭같이 키웠기 때문에 그의  성이 김씨인줄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희덕이는 내 외사촌이고 나의 어머님의 하나밖에 없는 친정 동생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인 외삼촌은 뛰어나게 머리가 좋아 관비 장학생이 되어 평양사범에 다녔고 학생 때 일본인들을 포함하여 전국 성악 경연 대회에서 당당히 2등을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것 같기도 하였다. 발령을 받고 평안남도 어느 시골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을 했는데 거기서 만난 여교사가 방희덕의 생모였다.


     그의 오라버니가 유명한 목사님이기도 하였지만 방희덕의 부모가 사랑에 실패하여 가정파탄 직전임을 알아차린 나의 어머니가 업어다 집에서 여성 사회단체가 날마다 공급하는 우유를 받아다 먹이면서 희덕이를 키웠다. 노래도 잘하고 공부도 곧잘하여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 가서 사회사업으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연세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교수로서 인기도 좋았고 또 MBC 같은 방송기관의 사회자로 나서서 맡은 일을 썩 잘 하였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겨 쉴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의 어머님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의 백혈병은 낫지 않았다.


     1940년 생인 그는 1988년 아내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날 충효공원 묘원에는 그의 친구들 백승기, 이경식, 심응권, 이우영, 최현섭 등이 다 와서 희덕이와의 작별을 서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식구들은 다 미국에 사는데 우리에겐 연락도 안 하고 고독하게 살고 있다. 희덕이 친국들도 다 가고 형인 나도 가면 방희덕이 나의 동생이었음을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방희덕, 오늘도 나에게는 그리운 동생이다.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0/09 [05:00]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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