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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없다지만
 
記者 김동길
 
 

    나는 유치원부터 다녔기 때문에 스승이 매우 많은 사람이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하던 이른바 태평양 전쟁 시대에 평양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는데 그 시절에는 밤낮 근로봉사에 동원이 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가르친 스승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최초의 스승은 유치원에서 나를 가르친 권도실 선생님이다. 그 어른이 나를 기억한다고 하셔서 미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아드님과 사시는 권도실 선생님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드님이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하고 LA에서 소아과 의사로 오래 일을 했는데 그 아드님 집이 글랜데일(Glendale)에 있어서 찾아가 뵐 수가 있었다.


    상수국민학교 다닐 때 김태훈’, ‘쯔다(일본인)’ ‘한중례선생님 등을 기억한다. 물론 대학에 다니면서부터는 백낙준 박사와 함석헌 선생님이 나의 스승이었지만 이호근, 최재서, 고병려 교수님들 또한 언제나 기억된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한국 국민 전체의 스승이시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그 많은 스승들 가운데서 몇 분의 이름을 왜 날마다 기억하고 사는가. 그 기억은 사랑을 받은 기억일 뿐이다.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저 놈이 잘못된 인간이 되면 아주 잘못 되겠지만 크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정방문하여 나의 어머님에게 그렇게 말씀드리던 담임선생을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리라. 그 말씀 한마디를 나는 한평생 잊어버리지 않고 산다.

 

김동길

Kimdonggill.com


 
기사입력: 2020/10/16 [05:14]  최종편집: ⓒ 국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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